16인치 Nam's 돕소니안 제작기(4탄)-로커박스

어느덧 16인치 돕소니안 제작 작업이 막바지로 치닫는다.
그간 목포와 수원을 오가며 이틀 내리 연가를 내던 아니면 토요일을 활용하던 하면서 제작작업을 진행했던 기억을 소환하니 열정이 없다면 과연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만큼 별 보기에 대한 내 열정은
인생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미 내 삶 한복판을 널찍하게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이라도 별 관련 직업이 주어진다면 지금 이 직업을 그만두어도 하등의 미련이 없을 만큼 반백을 넘은 나에게는 직장이 아니라 직업이 필요하고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남은 생을 불태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날은 업무가 바쁜 관계로 토요일 하루를 시간을 내어 아침 일찍 수원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네 시간 동안 라디오 김태훈의 프리웨이, 정지영의 오늘아침을 들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눈에 펼쳐지는 늦여름, 초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갔는데 그날따라 그 시간이 하나도 피곤하지가 않았다.

그냥 행복했다.
다른 대답이 필요 없을 만큼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와 사람 사는 이야기, 그리고 아름답게 펼쳐지는 자연의 섭리는
그 이상이 필요 없을 만큼 행복하고 신났다.

이날 시행한 작업은 로커박스, 그라운드보드, 사이드베어링을 만드는 작업이다.
무엇보다 하루동안 이 세가지를  조립하고 샌딩하고 거기에 칠을 하는 작업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지난번 미러박스 때처럼 남희샘께서 본딩 후 클램프를 단단히 죄어 완벽하게 굳힌 반제품 상태의 로커박스를 가지고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내가 다 해야 하는 작업인데....... 고맙기 그지없다.

거기다 새롭게 개량한 사이드베어링까지 작업을 마무리해주셨다.

특히 기존 사이트베어링은 미러박스에 체결상태에서는 간섭 때문에서 어퍼케이지를 미러박스에 얹힐 수가 없었다.
그로 인해 차량에 적재 시 미러박스와 로커박스 하나, 그리고 어퍼케이지 하나, 이렇게 두 덩어리로 분리해 적재할 수밖에 없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개량 사이드베어링은 그 단점을 보완해 만들었기 때문에 미러박스, 어퍼케이지, 로커박스를 한 덩어리로 포개어 차량에 적은 공간에 싣고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중간을 잘라 단차를 두고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인해 사이드베어링이 달린 미러박스에 어퍼케이지를 얹힐수 있다.

 
이날은 로커박스, 그라운드보드 그리고 사이드베어링을 샌딩, 스테인 그리고 바니쉬 칠을 진행했다. 
말이 로커박스 작업이지 그냥 이날은 반제품상태에 숟가락만 얹는 모양새가 되었다.

지난번 미러박스와 어퍼케이지의 경험을 토대로 주어진 모든 부품에 샌딩을 진행했다.
남희샘께 미안한 마음에 추가로 작업하고 계신 14인치와 12인치의 미러박스, 로커박스 그리고 어퍼케이지까지 샌딩을 해버렸다. 

간단하게 샌딩을 마무리하고는 점심 먹기 전까지 로커박스, 그라운드보드 그리고 사이드베어링에 스테인 칠을 했다.
점심식사와 커피타임에 다음 스텝을 위해 최소한의 건조시간을 확보하려는 생각이었다.
로커박스는 바닥면 칠이 필요 없으니 한 번에 바닥과 안쪽 네 면, 바깥쪽 네 면에 스테인 작업을 한 번에 할 수 있다.

그라운드보드와 사이드베어링은 앞뒤, 위아래가 있는 관계로 한 면을 칠하고 건조가 되면 다시 반대면을 칠해야 한다.
중간 건조단계에서 남희샘과 못다 한 이야기, 거기에 2년 전부터 배우기 시작하신 클래식기타 연주실력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원래 음악공부를 위해 독일 유학까지 다녀오시고는 음악 연주가의 길을 가셨으나 재밌고 즐거운 일을 찾으시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오셨다고 한다.
물론 큰교회에서 연주를 하시지만 망원경 만드는 장인의 길이 보람되고 즐겁다고 하시며 지금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 하신다.

나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지금 가는 길이 즐거운가?
행복한가?
과연 결단할 수는 있을까?
별지기의 길을 직업으로 선택해 갈 수는 있을까?

당장은 가족이 눈에 밟힌다.
그럴만한 용기가 내 안에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결단할 만큼의 별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활화산처럼 용광로처럼 펄펄 끓고는 있기는 하는걸까?
글을 쓰는 내내 내 자신에게 물어보니 역시 아직은 덜 영근 것 같다.

맛난 점심을 마치고 나니 5년 전 남희샘한테 당돌하게 전화해 망원경을 물어보고 관측을 수차례 따라다녔다는 숙녀분이 찾아왔다.

그때 남희샘 영향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호주 명문대학 천체물리학과 유학을 갔고 5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연락해 만나러 온다하니 별로 이어진 인연의 깊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찾아온 낯선 이와 의도치 않은 만남을 가졌고 여차저차해 돕소니안 작업까지 투입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별에 대한 열정이 강한 탓일까 바니쉬 칠을 제법 잘 수행한다. 기특하다.

내 아들딸도 이 숙녀처럼 별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있고 천체물리학 전공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져보기도 했다.

그렇게 이날 로커박스, 그라운드보드 그리고 사이드베어링 샌딩과 칠 작업은 밤 9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새로운 얼굴과 만남과 대화는
늘 신선하고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준다.

비록 나이가 어린 숙녀지만 별에 대한 사랑은 언제나 그렇듯 강한 유대관계를 이어주는 마법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