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문관측/관측일지

안시쟁이의 취미생활, 고정관측지와 농막 설치를 꿈꾸며

“천문학이 전해주는 아이디어에 의해서 우리 지적 능력의 지평 자체가 넓어졌을 뿐 아니라 천문학이 아니었더라면 숱한 편견 때문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인류의 정신세계가 우주 저 넓고 높은 세상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제임스피거슨(1757년, 런던)

별지기라면 한 번쯤 타인의 장비를 통해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진용을 구성하였거나 그럴 계획을 세워봤을 것이다.
때마침 내가 가입한 별하늘지기 카페에서 고수들의 장비 가방을 소개하는 ‘천문가의 가방’ 릴레이 글은 장비구성과 관측방법에 많은 힌트를 주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릴레이 글이 중단되어 아쉬웠는데 다행히 올해부터 천문가의 가방이 다시 시작된다는 글에 환호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댔지.
문제는 올해 첫 번째 글 주인공인 My universe 님이 다음 바통을 고수가 아닌 저에게 넘겨주신 터에 적잖이 당황했다.
과연 내가 그럴만한 실력과 자격을 갖추었는가? 라는 의구심과 부족함에 많은 고민이 되었지.
다만 글을 씀으로 인해 ‘지나온 별지가 생활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해보기’라는 나름의 성과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겠노라 했다.

#1 내 손을 거쳐 간 천체망원경

어릴 때 꿈이 딱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고고학자, 다른 하나는 천문학자.......

그렇게 어릴 적부터 쏟아지는 밤하늘 별을 보며 꿈을 키우면 살았지만 어느샌가 입시와 취업으로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12년 어느 날 밤하늘 찬란히 빛나는 별(목성)을 보고서야 비로소 내 꿈이 천문학자였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런 사소한 인지로 구입한 첫 망원경은 미드사의 etx90 max인데 경위대 GOTO 망원경을 써본 적도 없는 제게는 초보자용 망원경치고는 참으로 고된 여정의 시작이었다.

다행히 2014년 한아천 광주지부에서 진행했던 천문지도사 3급 과정을 통해 관측에 대한 기본지식을 배우게 되었고 그해 미드 라이트브릿지 12인치 돕소니안을 구매하게 되었다.

다음 해 2015년엔 망설임 없이 천문지도사 2급 과정을 이수했고 2016년부터는 본격적인 안시관측을 시작했다.
그해 더 세밀한 관측을 위해 스타이워처 18인치 돕소니안을 구매했고 이어서 쌍안망원경의 놀라운 입체감에 놀라 150mm 쌍안망원경을 중고로 매입을 하는 등 관측에 열정을 불태웠다.
메시에 마라톤 대회 참석으로 메시에 목록을 완주하고 NGC, 허셜400, HCG, IC 목록에 대해 거침없이 관측을 이어갔다.

스카이워처 18인치 돕소니안
150mm 쌍안망원경

2019년에는 매너리즘에 빠진 안시관측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천체스케치를 시작하면서 천체의 특징과 형태 등을 더 깊이 있게 공부를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나네.

물론 2019년도150mm 쌍안망원경150mm 쌍안망원경는 개인적으로 건강상의 이유(갑상선암 수술과 전이 그리고 정기적 검진)로 삶에 무기력함과 좌절에 빠지기도 했지만, 별을 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 때문이었을까요? 한 번의 수술로 병마의 기세를 힘겹게 극복했다.
지금은 위에 열거한 망원경을 좋은 분들께 넘겼고 지금의 12인치도 예진아빠님의 도움으로 자작돕으로 개조를 해놓은 상태다.

12인치 개조 돕소니안, 관측의자, 관측책상, 폴대가방 그리고 방한의류 가방
예진아빠님의 도움으로 라이트브릿지를 남스돕으로 개조했다.

또한 12인치 남스 쌍안돕소니안 제작을 의뢰해 놓은 상태라 언제가 될지는 기약은 없지만 쌍안돕소니안이 가져다줄 환상적인 안시적 입체감에 벌써 가슴이 뛴다.

※ 라인업 : 1차(미드 etx90max) → 2차(미드 라이드브릿치 12인치 돕/f5) → 3차(스카이워처 18인치 돕/f4) → 4차(150mm 아크로 쌍안망원경) → 5차(자작 12인치 개조돕) → 6차(12인치 남스 쌍안돕/f5)

먼저 주문하신분 쌍안돕이 만들어지는 과정.....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2 안시가방……. 배고픈 별지기들을 위한 라인업

안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아이피스다.
초기 아이피스 라인업은 조악한 번들 렌즈에서 시작해 저렴한 미드, 하이페리온, SWA 등으로 구성했었다.
그러다 안시관측에 자신이 생길 즈음 에토스, 독터, 니콘으로 넘어가려 했지만 만만치 않은 금액에 쉽게 결정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가난한 별지기들에게 해 뜰 날을 보게 해주는 가성비 굿의 중국산 XWA 100도 시리즈와 HFW12.5mm가 출시되면서 XWA 시리즈와 HFW로 진용을 구성해가고 있는 중이다.
주변부 상, 밝기와 선예도 등을 비교하면 2%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저는 고수가 아니라서 그런지 그런 부분을 알아차릴 수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위해본다.
여전히 고배율 아이피스가 필요하고 거기다가 쌍안돕소니안이 완성되면 쌍으로 진용을 재구성해야 하기에 열심히 총알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성비로 무장한 중국산 아이피스 ​

 

참고로 안시관측때 주변의 잡광을 없애고자 여러 방법이 있을 텐데 저는 간단하게 저만의 잡광제거 비법이 있다.
생각해보니 잡광제거보다는 한쪽 눈을 찡그리지 않고 두 눈으로 편하게 관측하는 데 더 유용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안시관측에 필수아이템......눈가리개 ​
안시관측가방 : 아이피스류, 콜리메이터, 광학&도트파인더, 필터류, 별지시기, 헤드렌턴 / 쌍안경, 가스히터

#3 천체스케치 도구…….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

메시에와 주요 NGC, IC 그리고 허셜400 목록까지 거침없이 달려들 때 즈음 서서히 안시관측에 나르시시즘이 찾아옵니다.늘 보는 대상, 언제나 알고 있는 안시적 형태 때문에 관측에 있어서 새로운 뭔가에 대한 갈망이 가슴 저편에 꿈틀대기 시작했지.
새로운 활력을 줄 만한 관측방식이 없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할 즈음 천체스케치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게 2019년 4월 첫 천체스케치를 시작했다.

어릴 때 그림에 약간의 소질과 경험이 있던 터라 흰색으로만 명암처리를 하는 수준의 그리기는 처음 시도하는 내게는 그리 어려운 도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전에는 관측 당일 얼마나 많은 대상을 찾느냐가 목표였다면 이제는 얼마나 세밀하게 대상의 특징을 알아내고 기록하느냐로 방향이 전환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스케치로 인해 관측 후 잔상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독보적인 장점에 잘 선택했다고 자평해본다.
어느덧 스케치북은 네 권째를 넘어 곧 다섯 권째를 바라볼 만큼 안시관측에 필수 항목이 되었다.

안시는 이렇다 할 기록 방법이 없으니 흔적을 남길 도리가 없는데 스케치 덕분에 관측 기록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다만 스케치의 후처리(장기간 보존을 위해 정착제를 뿌리는데 이때 과하게 뿌리면 파스텔 칠 -성운기 표현을 위한 필수작업- 흔적이 맥없이 연해지거나 흔적 없이 사라지는 낭패를 보게 됨) 시간이 필요하게 되니 이마저도 쪼끔은 고달프다. ㅠㅠ 

스케치용 문구류(젤리펜, 파스텔펜, 칠묵 등), 검정색 스케치북

#4 안시쟁이의 소소한 촬영

​딥스카이 촬영을 시작하기 전 소박한 천체촬영에 도움을 준 장비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은하수를 비롯해 일주 사진과 태양&달 사진이 그랬죠. 물론 저녁노을, 구름도 멋진 촬영주제이기도 했다.
그렇게 은하수와 일주사진, 달사진을 찍고 가끔 천문이벤트인 일식과 월식 그리고 혜성 촬영을 하는 데 아주 유용한 장비이다.

* 소소한 촬영장비 구성 : (카메라)소니알파6000 / (렌즈)MEIKE 12mm, 칼짜이즈16-70mm, 번들 55-200mm, RedCat51, 삼양135mm / (기타)삼각대, 티링(아이피스 확대촬영), 인터벌 릴리즈
전남 신안 자은도 하늘
달과 목성 근접 그리고 목성 4대 위성
전남 신안 자은도에 내리는 니오와이즈혜성

 

또 하나의 소소한 촬영장비는 단연 돕소니안을 이용한 아이피스 확대촬영입니다. 장초첨 망원경이어야만 찍을 수 있었던 행성과 달표면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딥스카이 촬영과 비교도 안 되는 단노출과 단 컷의 한계로 인한 사진의 퀄리티는 아주 좋은 시상 때의 사진이 아닌 이상 내놓기 민망한 수준의 사진이 대부분이다.

아이피스 확대촬영 장비
2020년 목성토성 대근접
태양계 촬영 사진
달 크레이터

 

#5 안시쟁이의 새로운 취미생활 “천체촬영”

​별지기에게 안시관측 자체가 취미면서 무슨 안시쟁이의 취미생활이라는 뚱딴지같은 제목을 달았을까?
그게 말이죠…. 그냥 명분 아니 핑계를 찾다 보니 이런 거창한 표현까지 동원되는군. ᅮᅮ

​2019년 한참 천체스케치에 몰두하고 있을 즈음 마음 한편에서는 이미 스케치 이후를 고민하고 있었다.
원하는 대상의 그림을 모조리 그리고 나면 또다시 관측방식을 고민하게 될 테고 그때는 뭘 해야 하지? 결국 사진을 해야 하는 건가? 뭐 이런 고민인 거지.

결국은 2019년 5월 간이적도의(스타어드벤츄어러) 구매를 했는데 이게 판도라의 상자가 되고 말았네.
이를 기점으로 삼양렌즈와 가이드장비, 삼각대를 시작으로 그해 중국 광군제때 망원경(70SA V3)를 구매했고 2020년에는 적도의(CRUX140)과 AIRPRO, 카메라(294mc pro) 라인업을 완성했다.

그런데 말이지....

2021년에 지금의 라인업 업그레이드를 핑계로 카메라(2600mc pro)와 망원경(Askar fra600)을 대책 없이 지름신의 강림을 받아들이고 말았네. 큰 출혈이었다.

이제는 진짜 지금의 라인업이 마지막이라는 각오 아닌 각오를 하지만 저는 사실 자신이 없다.

그래서 너무 웃프다.

시계방향으로 말머리성운, 오리온대성운, 플레이아데스성단, 페르세우스이중성단, 장미성운 / 겨울철 명작들이다
4차 라인업으로 찍은 결과물, 마카리안체인은 redcat51로 촬영
빨강의 저주는 계속되고 있다 ㅠㅜ (시계방향으로 비축가이더, Asiair pro, Asi120mm-s, Asi2600mc-pro, L-Pro & L-eXtreme필터)

Crux140, 5차 라인업 경통 Askar fra600, 하프피어(SUPER MOUNT)&삼각대(INNOREL) ​

 

아무쪼록 일전에 제가 쓴 글에서 언급했듯이 한쪽에서 촬영을 돌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안시관측을 하는 안시쟁이의 취미생활이 잘 정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하룻밤에 짬짜면을 먹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오늘은 짬뽕 내일은 짜장면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제 본업은 짬뽕이고 취미는 짜장면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더불어 주변 별지기(사진파)들에게 촬영이 완료되는 시간까지 안시 관측봉사를 할 수만 있다면 제게는 더없는 영광이겠지요.

※ 라인업(카메라/경통/적도의/가이드장치) : 1차(캐논6D/미드ETX90 MAX) → 2차(캐논6D/삼양135mm/Star Adventurer/ZWO 30f4&120mm-s) → 3차(캐논6D/70sa v3/Crux140/ZWO 30f4&120mm-s) → 4차(Asi294mc pro/70sa v3/Crux140/윌리엄옵틱스50mm&120mm-s)
5라인업 : ASI2600mc pro, Askar fra600, Crux140, OAG, 120mm mini, INNOREL RT90C

 

#6 별지기 궁극의 목표……. “고정관측지” 확보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단어이죠. 고정관측지….

제 궁극의 목표가 바로 고정관측지 200평 정도를 매입해 작은 농막 하나 갖다 놓고 언제든 가서 별을 볼 수 있는 힐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안에 별을 볼 수 있는 싸고 집과 가까우면서 사람이 다닐 만한 나만의 관측지가 과연 있을까?
밝은 별을 볼 수 있는 싼 땅은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찾을 수 있다.
특히나 제가 사는 전남은 섬 천국입니다. 칠흑같이 까만 밤하늘을 보유할 것 같은 섬 비율이 전국의 62.4%입니다만 문제는 도시민이 대부분인 별지기에게 도시와 가까이에 있느냐이며 과연 거기는 사람이 다닐 만하냐가 또한 중요하지.

이런저런 조건에 부합한 곳을 단기간에 찾기가 쉽지 않으니 사실 지난해부터 이곳저곳을 알아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가만히 추측해 본다.
목포가 집인 제겐 사실 1시간 이내 거리에 어두운 밤하늘을 가진 지역이 제법 있으며 그중 유력한 후보지는 해남, 강진, 보성이다. 남쪽 바다와 섬은 광해가 심하니 바다에 인접하지 않은 곳, 산과 골짜기라도 바람이 적은 곳, 평지지만 민가 불빛이 없는 곳…. 이래저래 쉽지 않네.

#7 특별한 상태…. 현재의 영원(永遠)

크리스토퍼 듀드니는 그의 『세상의 혼』에서 세상에는 두 개의 영원(永遠)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끝없이 지속되는 영원(永遠)이고 또 하나는 미래도 과거도 사라진 오직 현재만 있는 특별한 상태를 영원(永遠)이라고 했다.

밤마다 우주를 경험하는 우리 별지기들에게 영원(永遠)은 무엇일까?

좁은 아이피스 때론 카메라로 우주를 보고 있을 때 우리는 마치 시간이 정지되어있는 듯한 특별한 상태를 경험하는데 그것이 우리에겐 영원이지 않을까?

찰나를 사는 우리는 무한한 우주의 영원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밤마다 아이피스를 통해 우주를 여행하는 그 특별한 상태로 간접적으로나마 우주의 영원을 경험할 수 있으니 별보기는 참으로 좋은 습관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