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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관측/관측일지

제2기 스타헌터 3회차 좌충우돌 연수

두번 연속 좋은 하늘이 펼쳐져 무사히 2회차까지 연수를 마쳤는데 과연 3회차 연수날에도 좋은 하늘이 펼쳐질것인가?
기대반 설마반이었다.

안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선고기일에 대답없는 헌법재판소 때문에 일상이 힘든 나날이었던터라 3회차 관측 디데이는 기다림도 설렘도 없었다. 그저 강사라는 직분때문에 의무방어전의 자세로 이 날을 맞이했다.

설상가상으로 경상도를 잿더미로 만들고 있던 단군이래 최악의 산불로 사람 목숨이 날아가고 이재민이 속출하며, 수십년을 가꾸어온 푸른 강산이 초토화되어 가는 절박한 상황에 별을 본다는 것이 양심의 가책으로까지 느껴지던 심정이었으니 심리적 갈등이 오죽하였을까?

이번만큼은 비라도 내리면 산불진화도 되고 편치않은 마음에 가야만하는 스타헌터를 안갈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 생각이드는건 당연하거겠지

그런데....당일 오후부턴 날씨가 화창해진다는 예보때문에 스타헌터는 예정대로 진행된다니 일말의 기대조차 허망해진다.

그렇게 무거운 몸과 맘을 다독이며 괴산에 도착해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할즈음 눈이 내린다. 눈발이 더욱 굵어지더니 이내  굵은 눈보라가 시야를 가린다.

곧 4월인데 눈이라니......
초유의 산불에 때늦은 눈까지...
말로만 듣던 기후변화의 저주를 눈으로 목격하는 순간이다.

괴산 서울농장 황토색 운동장은 어느새 흰눈으로 빼곡히 덧칠해져버린다.


오후에 좋아지겠지...
좋아진다는 예보가 있으니 기다려보자.
근데 네시 이후 좋아진다는 예보는 거짓말처럼 저녁 일곱시이후에나 좋아진다고 바뀌어버리니 불안함이 엄습해온다.

하나둘 연수생이 모이고 날씨에 관한 대화를 이어가는 중에 예정대로 모처럼 계획한 천문학강의를 시작했다.
연수생 중 교직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학선생님이 우주상수, 우주가속팽창,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그리고 빅뱅과 우주인플레이션까지 우주에 관한 논쟁들을 아주 재미있게 강의를 해주셨다.


곧이어 내가 바통을 이어받아 봄철에 맞게 처녀자리 메시에은하 공략법에 관한 강의를 했다.
처녀자리 은하, 사자자리 트리플렛 은하, 마리털자리 은하단 등...중요한 대상을 찾는 스타호핑법과 파인더경을 활용한 공략법을 알려주었다.

이날 관측과제는

처녀자리은하단
마카리안체인, m85, 100, 98, 99, 86, 84, 88, 91, 90, 89, 87, 58, 59, 60, 61, 49....외 주위 ngc

머리털 자리
m53+ngc5053(한시야  관측)
ngc4656+4631(한시야  관측)
ngc4565

사자자리
레오 트리플 m65, 66, ngc3628/
m105, 95, 96, ngc3507, ngc2903 이다.


강의를 끝내고 나니 눈이 그치고 땅을 덮었던 뾰얀 눈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하늘은 아주 살짝 푸른물감을 이곳저곳에 뿌려놓았다.  그러나 바람은 성난 맹수처럼 골짜기 나무와 마을 전신주를 무섭게 흔들고 있었다.

예보는 여전히 저녁부터 좋아진다하니 모두는 시키지도 않았어도 각자의 위치로 가서는 이내 망원경을 펼치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는 칠흙의 밤을 기대하며 오늘 공부했던 봄철 은하를 복기해보지만 하늘은 은빛 면사포로 가린듯 좀처럼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여덟시를 넘어 아홉시를 지나 처녀자리 은하를 탐색할 최적의 시간이 되어도 지저분한 구름 줄기들이 야속하게 줄을 지어 흘러만 간다.
속이 바짝 타들어간다.

간혹 사자자리가 본래 성격과는 다르게 살포시 접근을 허용해주어 트리플랫을 볼 수 있었고, 또 서쪽이 열려 쌍둥이, 오리온, 마차부자리의 메시에 대상들을 볼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처녀자리와 머리털자리를 뒤덮은 얇디얇은 은색 베일 때문에 속살이 보일듯 말듯 애간장만 태웠다.

기다리다 지쳐 다수는 숙소에서 쉼을 택하였지만 일부는 오롯이 악조건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하면서 T형 Y형 스타체인을 찾아가며 기연치 대상을 찾아간다.
나또한 자포자기로 숙소에서 몸을 녹이고 싶었지만 그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남은 그 몇을 응원하고 질문에 답해줘야 하기에....

이대로 끝인가?
한달을 기다려 먼거리를 달려 온 이들의 실망이 클텐데..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간절함이 통하기로 한듯 밤 열시가 되니 처녀자리 주변의 은막이 눈에 띄게 얇아졌다. 지금 나와야 관측할 수 있다고 숙소쪽을 향해 절박한 심정을 담아 소리쳤다.
주인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망원경들 사이로 어느새 사람들로 북쩍였다.

연수생 각자가 정한 곳 이곳 저곳을 다니며 호핑법을 알려주고......
찾았으니 맞는지 알려달라는 곳에 진위를 확인해 주고......
도전에 주저하는 분께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며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흘러
완주한 사람이 나오고..
홀로 호핑하여 성공적으로 찾는 자의 환호성이 나오고....
이것만 찾는 걸로 만족한다며 과한 목표를 버리고 스스로의 한계를 잡고 도전하기도 하고....

하늘엔 여전히 얇디 얇의 은막이 드리워져 있지만 악조건에서 고군분투하는 저마다의 열정에 한편으론 쨍한 날보다는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하를 웃도는 변덕스러운 3월말

그렇게 모두는 별과 일체되어 순진한 동심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