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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여전히 진행형/고구려 이야기

간도를 둘러싼 한중간 영토분쟁

간도 영토 분쟁

 

《중국이 고구려사의 중국사 귀속을 위해 추진 중인 ‘동북공정(東北工程)’의 2003년 중점 연구과제 가운데 ‘간도(間島) 문제 연구’가 있다. 동북공정의 연구과제 중 현재 남북한-중국간 분쟁지역을 다루는 유일한 주제이다. 역사학자 박선영 박사(38·동아시아 현대사·사진)는 “중국이 간도를 자국 영토로 만들기 위해 고구려사의 자국사 귀속 등 동북지역 역사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박사는 한국중국학회가 이달 중순 발간하는 반년간지 ‘중국학보’ 48집에 실릴 논문 ‘혈맹과 선린우호의 함수관계 사이에 남겨진 국경문제:간도 문제를 중심으로’에서 한국과 중국간 간도 영토 분쟁의 의미를 짚었다.》

 

▽간도 분쟁 왜 일어났나

 

간도의 구체적 영역에 대해서는 한중간, 그리고 한국 학자들 사이에서도 견해차가 크다. 1909년 중국과 일본이 맺은 간도협약에서의 간도는 중국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와 대강 일치하는 북간도(또는 동간도)를 말한다.

 

간도는 영토 개념이 명확하지 않던 시절 청나라와 조선의 변경지대로 조선인들이 15세기 이전부터 이주해 개간하고 살던 곳이다. 그러나 청은 1712년 백두산정계비를 세우고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지역을 봉금(封禁)지역으로 지정해 조선인과 한(漢)족의 출입을 막았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은 1909년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고 안봉선 철도(안동∼봉천) 개설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지방을 청에 넘겨주었으며, 1952년 옌볜조선족자치구(1955년 옌볜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되어 현재에 이른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북한은 식민지시대 중국의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에 협력한 대가로 간도 할양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1962년 중국이 6·25전쟁의 참전 대가로 북한에 백두산 지역 양도를 요구했으나 북한의 요구대로 백두산 천지를 분할해, 간도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이 더 이상 요구하기 어렵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박사에 따르면 동아시아 국가들이 간도를 둘러싸고 각축을 벌였던 이유는 간도가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의 세력이 접촉하는 완충지대이자 동서를 장악하고 남북을 제어할 수 있는 잠재력을 구비한 요지이기 때문이다. 간도는 또 토지가 비옥하고 금 은 석탄 구리 철광 등 광석이 풍부하며 장백산 북쪽 산기슭을 경유해 선양(瀋陽)에 이르는 중요한 교통로이다.

 

 

 

 

 

<프랑스 지리학자가 제작한 조선지도-간도를 한국령으로 보고있다>

 

 

 

<간도를 한국령으로 보고 있는 유럽 고지도들>

 

 

 

<조선에서 이주해 온 조선족들이 장군총 앞에서 기념촬영....당시 나라를 떠났어도 그들은 고구려을 조선의 역사로 인식했다>

 

<1930년대 국내성(중국 집안)에 있는 장군총(장수왕릉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