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아래 ‘악의 빙산’을 보라 [신진욱의 시선]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12·3 쿠데타 이후 어느새 한달이 지났다. 그사이 국회 증언 및 수사로 드러난 사실들과 정부·여당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는 12·3 내란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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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쿠데타 이후 어느새 한달이 지났다. 그사이 국회 증언 및 수사로 드러난 사실들과 정부·여당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는 12·3 내란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더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가 운명의 도움과 시민들의 용기로 가까스로 모면한 것이 단지 일시적 계엄이 아니라 잔혹한 테러였다는 것이다. 도끼로 문을 찍고 총을 쏴서라도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대통령의 명령, 군 체포조가 소지한 야구방망이, 송곳, 망치 등 고문 도구, 그리고 정치인, 판사, 언론인, 종교인, 노조 지도자들을 ‘수거’, ‘처리’, ‘사살’한다는 작전 계획은 한국 현대사를 피로 물들인 국가폭력의 귀환을 뜻했다.
내란 세력이 계획한 대로 국회 봉쇄, 주요 인사 체포, 선관위원 고문, 부정선거 선포, 국회 해산, 독재의 수립이 완료되었다면, 지금쯤 우리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것과 같은 공포의 감옥 안에 살고 있을 것이다.
계엄 뒤 밝혀진 또 하나의 중대한 사실은, 위와 같은 대내적 독재 수립 계획이 대외적 전쟁 도발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권은 비상계엄의 명분을 만들고 독재를 정당화할 목적으로 북한에 수차례 군사적 도발을 했으며, 심지어 국내 공항과 미군 기지에 북한 소행으로 위장한 테러 계획까지 세웠다는 증언이 나왔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군사 도발을 자행하는 ‘깡패국가’로 전락하여 국제적 리스크가 되는 것을 진지하게 우려해야 한다.
그동안 극우 세력은 북한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거나 한국이 북한의 핵 조공국이 될 거라는 협박으로 윤 정권의 독재화를 정당화해왔다. 그러나 이제 국제사회는 북핵 위험 못지않게, 한국이 3차 대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일 위험 역시 크다고 인지하게 됐다.
이처럼 공포정치와 전쟁국가를 세우려 한 무시무시한 시도가 윤석열이라는 나쁜 대통령 한명 때문에 일어날 수는 없다. 윤석열이 해수면 위로 솟은 얼음송곳이라면, 그 아래에는 수많은 군 장성과 장교, 정부 각료, 정치인, 검경 및 국정원 수뇌부, 극우 유튜버와 목사, 광신적 추종자로 이뤄진 거대한 악의 빙산이 있다.
그것의 한 축은 국가기관과 정당의 부패한 엘리트 집단이다. 12·3 쿠데타와 그 이후 상황에서 놀라운 사실은 군과 검경, 국정원 지도부의 수많은 인물이 내란을 공모·실행했으며, 국무위원들과 국민의힘 의원들 대다수도 내란에 동조하여 엄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는 거대한 폭력조직, 범죄조직이 되었고, 국민은 그 인질로 잡혀 있다. 그래서 국민은 법을 지키려면 그들의 파렴치함을 지켜볼 수밖에 없고, 그들을 징벌하려면 법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다른 한 축은 극우단체들과 거기에 연계된 사회 각계 엘리트 집단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극우 개신교 세력과 반공 이념단체, 우익 엘리트 단체들이 포함된다. ‘극우’ 하면 사람들은 보통 집회에서 극언을 쏟아내는 전광훈 목사,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며 호응하는 신도, 선글라스와 군복 차림의 노인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많은 극우단체의 임원, 발기인은 전현직 총리, 장차관, 군 장성, 판검사, 교수, 언론인이다. 이들은 국가조직과 정치권력에 깊숙이 들어가기도 하며, 후방 지원 역할을 하기도 한다.
12·3 쿠데타에서 나타난 테러독재 구상과 대북 전쟁 도발은 윤석열 개인의 망상이 아니라, 위와 같은 거대한 극우냉전독재 세력의 ‘사회적 하부구조’를 윤석열 정권의 당·정·군·검·경 지도부가 극한까지 응축시킨 결정체였다. 역으로 윤석열을 지키려 국민의힘과 극우단체, 대형 교회 목사들이 결집하는 이유 역시, 이 우둔하고 광폭한 술꾼을 추앙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 윤석열’이 그들의 이익과 욕망을 실현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 정당, 사회에 포진한 극우 엘리트 세력이, 국민 대다수가 염원하는 윤석열 탄핵과 내란 세력의 사법 처리를 온몸으로 막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다. 이 교착 상태가 어느 쪽의 승리로 끝날지 가늠할 수 없기에, 대한민국은 운명의 갈림길에서 불안하게 서성이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이 파면되고 내란 세력이 완전히 처벌된다면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말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 재공고화와 국제사회의 재평가를 위한 노력을 개시할 수 있다. 하지만 탄핵이 기각되어 윤석열이 대통령에 복귀한다면 그는 거듭 독재화와 전쟁 도발을 꾀할 것이다.
이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사태가 불행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려면 야당과 수사당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단지 탄핵, 조기 대선, 정권 교체로 이어진 2016~17년의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극우의 하부구조를 깰 수 있는 힘은 그들의 차별과 폭력에 의해 고통받고 지워진 존재들의 행동과 연대에서만 나올 수 있다.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의 투쟁에서 시민들은 행동에서 희망이 생겨나며, 연대에서 힘이 생겨난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 싸움은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시리도록 구체적인 생존과 존엄의 문제다.
우리는 그것을 오직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것을 통해서만 지켜낼 수 있기에, 그리고 독재는 사회의 힘없는 이들을 가장 먼저, 가장 가혹하게 희생시킬 것이기에,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지향은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실업자,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자, 청년, 학생, 군사독재를 겪은 부모 세대를 이어주는 고리가 되어주고 있다.
계엄 이후의 국가적 위기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많은 것을 얻기도 했다. 이 나라의 국가기관과 엘리트 집단이 얼마나 썩어 있는지를 각성하게 되었고,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겸허히 성찰하게 되었으며, 그런 현실과 싸우며 연대하는 공동체가 생겨났고,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 평화를 염원하는 세력이 압도적 다수임을 확인하고 있기도 하다.
이 고비를 잘 극복한다면, 지금의 국난은 더 나은 사회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낙관의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존엄을 지키려는 절박함 때문에 싸우고, 그 싸움이 희망의 틈새를 만들어낸다. 2024년은 어둑한 불안과 슬픔이 가득했던 한해였다. 2025년에는 우리가 악의 빙산을 깨뜨리는 수천개의 빛이 되자.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hanidigital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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