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없는 밤하늘에서 탄생한 학문
- 별빛이 가져다준 ‘천문학’ /이광식
‘우주시대’의 개막
지난 2월 22일 인류 역사상 최초로 민간인 우주여행객이 탄생했다. 미국의 우주개발기업 버진갤럭틱(Virgin Galactic)이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 우주센터에서 민간 승객을 태우고 우주를 왕복여행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인류의 우주여행 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다. 이는 1957년 러시아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최초로 우주로 진출한 지 62년 만에 이룩한 쾌거로, 이로써 우주는 인류의 앞마당으로 성큼 다가선 셈이다.
인류가 우주를 꿈꾸고 사색하기 시작한 것은 인류의 출현과 동시에 이루어진 일로, 이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사냥과 채취로 생을 꾸려나가야 했던 원시인들은 해와 달, 별의 운행을 보고 시간과 계절을 가늠하고, 먹거리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천문학(天文學, astronomy)의 시작으로, 어떤 분야보다도 가장 일찍 태동한 학문이 된 이유이다.
이런 연유로 천문학자들은 ‘철학이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면 천문학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다’고 하며, ‘천문학은 인류가 우주 속의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내라는 소명을 갖고 태어난 학문’이라고도 한다.
천문학은 한마디로 우주의 탄생과 진화와 종말, 그리고 별이나 행성, 혜성, 은하와 같은 천체를 연구하는 자연과학의 한 분야로, 인류의 기원과 미래에도 직결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흔히들 "천문학은 구름 없는 밤하늘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구름이 없어야 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우주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지식은 알고 보면 별이 가르쳐준 것이다. 수천 광년의 거리를 가로질러 우리 눈에 비치는 별빛만큼 심오한 존재는 달리 없을 것이다. 별에 대해 꼭 기억해야 할 점은 우주의 모든 정보들은 별빛 속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별빛으로 별과의 거리를 재고, 별빛을 분석해 별의 성분을 알아낸다. 우리은하의 모양과 크기를 가르쳐준 것도 별빛이요, 우주가 빅뱅에서 출발하여 이 순간에도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따지고 보면 별빛이다. 그러므로 천문학은 별빛이 가져다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대인들의 우주론- 창조신화
인류가 본격적인 문명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은 기원전 1만 년경, 수렵채취 생활에서 벗어나 한곳에 정착해 농경문화를 일구어나가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천문학도 마찬가지였다. 일정한 곳에 정착하는 생활은 해와 달, 별들의 운행을 더욱 잘 관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계절마다 해뜸과 해짐 장소가 다르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고, 낮과 밤의 변화, 계절이 바뀌는 패턴을 더욱 잘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원래 태생적으로 패턴을 찾는 동물이다. 이러한 습성은 원시 수렵시대부터 몸에 배게 되었다. 풀숲이 움직이면 그 속에는 짐승이 웅크리고 있을 거라고 판단했으며, 서늘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곧 겨울이 닥쳐올 것이라고 믿었다. 이처럼 패턴을 읽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러나 패턴에 대한 지나친 믿음은 때로는 비합리성을 낳고 그릇된 종교적 신념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인간이란 가까운 인과관계는 이성적으로 따지려 하지만, 아주 먼 인과관계는 불확실성을 싫어한 나머지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이 각 민족마다 가지고 있는 창조신화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고대인들 역시 이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 중 사색을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한밤중 동굴 앞에 나와 앉아 밤하늘의 달과 별의 운행을 지켜보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쳐나갔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주론의 시작이었다.
고대인들이 둥근 하늘이 땅을 뒤덮고 편평한 땅이 펼쳐진 것을 보고는 자신들이 사는 땅덩어리가 무엇인가에 얹혀 있다고 생각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고대의 가장 오래된 창조신화는 수메르인이 남긴 것이었다. 그들은 하늘에는 보이지 않는 신들이 존재하며, 이 신들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영향을 끼친다는 믿었다. 편평한 땅덩어리 위에는 신들이 거주하는 하늘이 둥글게 덮여 있고, 이 천장과 땅 사이에는 태양과 달, 별들이 가득 차 있으며, 세상 모든 것이 신들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이른바 인류의 가장 오랜 둥근 천장 우주관이다.
이처럼 창조신화는 민족들의 문명 초기에 놀라운 상상력으로 빚어지고 공동체에서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여졌으며, 이윽고 인류 최초의 우주론이 되었다. 이 같은 원초적인 우주론을 바탕으로 오랜 여정을 거친 끝에 오늘의 현대적인 우주론이 나타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림2] 고대에서 현대 우주론으로의 발전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출처:NASA)
우주의 모든 것은 ‘별’에서 나왔다
138억 년 전 ‘원시 원자(Primeval Atom)’가 일으킨 대폭발에서 우주가 탄생했다는 빅뱅 우주론에 딴지를 거는 과학자들은 거의 없다. 빅뱅 우주공간에 최초로 나타난 물질은 바로 수소구름이었고, 이 수소구름 속에서 잉태된 것이 바로 별이다.
태양을 비롯한 대부분의 별은 주로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원소가 전 우주의 물질 중 99% 이상을 차지하며, 다른 원소들은 다 합해봐야 1% 미만이다. 천문학에서는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모두 중원소로 친다. 그럼 중원소들은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 이 문제는 별이 무슨 에너지로 빛나고 있는가라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별의 속심에서는 여러 단계의 핵융합 반응을 통해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차례대로 만들어져 별의 내부에 켜켜이 쌓인다. 빅뱅 우주공간에서 만들어진 수소와 헬륨을 뺀 모든 원자들은 별이 벼려낸 것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별을 우주의 주방, 별의 속심을 우주의 주방장이라 한다.
그러나 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 원소 요리 행진의 레시피는 원자번호 26번인 철에서 딱 멈추어진다. 원자핵이 핵융합을 통해 더 큰 원자핵이 되는 것은 더 커질수록 에너지가 낮은 상태, 즉 더 안정한 상태의 원자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 원자핵보다 커지면 오히려 에너지 상태가 높은 불안정한 원자핵이 되고, 이들은 핵분열을 통해 더 안정한 원자핵이 되려고 한다. 따라서 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핵융합이라는 원소 요리 레시피는 철보다 무거운 원자핵을 만들 수가 없다. 그렇다면 원자번호 27번 이후 92번 우라늄까지의 원자핵들은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
철보다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내는 레시피는 태양보다 8배 이상 무거운 별의 장렬한 죽음이라 할 수 있는 초신성 폭발이다. 이러한 별들은 속심에서 핵융합이 단계별로 진행되다가 이윽고 규소가 연소해서 철이 될 때 강력한 중력붕괴가 일어나고 바로 대폭발로 이어진다. 이것이 이른바 슈퍼노바(Supernova), 곧 초신성 폭발이다. 거대한 별이 한순간의 폭발로 자신의 모든 물질을 우주공간으로 폭풍처럼 내뿜어버린다. 우주 최대의 드라마다. 이때 별이 일생 동안 핵융합을 통해 방출한 것보다도 더 많은 에너지가 순식간에 방출된다. 만약 이런 초신성이 태양계에서 몇 광년 안되는 곳에서 폭발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그 순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기도해야 한다.
초신성 폭발 때 발생하는 엄청난 초고온-초고압으로 원자의 핵자 속에 양성자, 중성자들을 박아넣어 무거운 원소를 벼려낸다. 이것이 초신성의 중원소 합성으로, 금이나 은, 우라늄 같은 중원소는 이때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따라서 많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금이 철보다 비싼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초신성의 연금술이다. 연금술사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연금술은 초신성 같은 대폭발이 없이는 애초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초고온-초고압은 지구상에서 결코 만들 수 없는 것으로, 연금술사들은 헛수고만 진탕 한 셈이다. 뉴턴도 그중 한 사람이다.
지금 당신의 손가락에 끼어져 있는 금은 두말할 것도 없이 초신성 폭발에서 나온 것으로, 지구가 만들어질 때 섞여들어 금맥을 이루고, 광부의 손에 캐내어져 가공된 후 금은방을 거쳐 당신 손가락에 끼어진 것이다. 이것은 가정이 아니라 팩트다.
[그림3] 1054년 초신성 폭발의 잔해인 게 성운. 지구에서 약 6,500광년 떨어져 있으며, 성운의
지름은 11광년이다. 현재도 초속 1,500km로 바깥쪽으로 퍼지고 있다.(출처:NASA)
‘별에서 온 당신’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뒷담화는,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원소들, 곧 피 속의 철, 이빨 속의 칼슘, DNA의 질소, 갑상선의 요드 등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는 모두 별 속에서 빚어졌다는 사실이다. 수십억 년 전 초신성 폭발로 우주를 떠돌던 별먼지가 뭉쳐져 지구를 만들고, 이것을 재료삼아 뭇 생명체와 인간을 만든 것이다. 이건 무슨 비유가 아니라, 과학이고 실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고 보면 어버이별에게서 몸을 받아 태어난 별의 자녀들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별먼지로 만들어진 ‘메이드 인 스타(made in stars)'인 셈이다. 이게 바로 별과 인간의 관계, 우주와 나의 관계다. 이처럼 우리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은하 탄생의 시초로 거슬러올라가면 수없이 많은 초신성 폭발의 찌꺼기들이 수십억 년 우주를 떠돌다 태양계가 생성될 때 지구에 흘러들었고, 마침내 나와 새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서 그 새의 지저귐을 듣고 있는 것이다. 별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우주로 내놓지 않았더라면 당신과 나 그리고 새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의 시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소쩍새가 온몸으로 우는 동안
별들도 온몸으로 빛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내가 버젓이 잠을 청한다(고은의 ‘순간의 꽃’ 중에서)
생각해보면, 우주공간을 떠도는 수소 원자 하나, 우리 몸 속의 산소 원자 하나에도 백억 년 우주의 역사가 숨쉬고 있다. 138억 년 전 우주가 태어난 이래 오랜 여정을 거쳐 우리 인류는 지금 여기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주의 오랜 시간과 사랑이 우리를 키워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밤 바깥에 나가 하늘의 별을 한번 바라보라. 아마도 예전에 보던 별과는 조금은 달리 보일 것이다. 저 아득한 높이에서 반짝이는 별들에 그리움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진정 우주적인 사랑을 가슴에 품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평생 같이 별을 관측하다가 나란히 묻힌 어느 두 여성 별지기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한다.
“우리는 별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이제는 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지질-자원-사람> 3-4월호(한국지질자원연구원 사보) 게재
[출처] +구름 없는 밤하늘에서 탄생한 학문|작성자 저녁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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